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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10-12본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에서
납골당에서 구청으로
장례를 마친 유족은 고인을 납골당에 모셨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발길은 곧 구청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고인은 오랫동안 작은 가게를 꾸려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고, 남은 가족은 그 가게를 닫지 않기로 했습니다. 간판을 내리는 일이 고인을 한 번 더 떠나보내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고인이 일군 자리에서 계속 문을 여는 것. 유족이 생각한 애도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려면 행정 절차 하나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 절차는, 마흔 해 가까이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 하나를 다시 불러내야 끝나는 일이었습니다.
한 달이라는 기한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가게의 영업자 자리는 상속인에게 넘어갑니다. 넘겨받은 사람은 한 달 안에 구청에 그 사실을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이 주어집니다. 한 달... 장례를 치르고, 사망신고를 하고, 고인의 물건을 정리하고, 거래처에 소식을 전하다 보면 지나가 버리는 시간입니다.
고인의 아버지는 혼자 구청을 찾아가 영업자 지위승계 신고서를 냈습니다. 돌아온 구청의 답은 이랬습니다. 상속인이 여럿이면 상속인 전원이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인의 공동상속인은 친부와 친모였습니다. 그런데 친모는 고인이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뒤로 연락이 끊긴 사람이었습니다. 친부가 홀로 아이를 키웠고, 그 긴 시간 동안 친모가 고인을 찾아온 적은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지금 어디에 사는지, 아니 살아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정은 알겠지만, 서류상 상속인이시라서요.”
담당 공무원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그분들에게는 정해진 서류 밖으로 나갈 권한이 없습니다. 다만 제도를 들여다볼수록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법은 유족에게 한 달 안에 움직이라고 요구하면서, 마흔 해 동안 움직이지 않은 사람의 서명을 받아 오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찾는 방법
개인이 다른 사람의 현재 주소를 알아낼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가족이라 해도, 수십 년 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법원의 절차 안으로 들어가야, 법원을 통해 상대방의 주소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꺼내 든 것이 상속권 상실 선고 청구입니다. 흔히 ‘구하라법’이라고 부르는 제도로, 올해 1월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자식을 돌보지 않은 부모가 그 자식이 남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다른 상속인이 청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식이 미성년자였던 시절의 부양의무만 따졌지만,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그 제한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자식이 어른이 된 뒤의 세월까지 함께 물을 수 있습니다.
소장이 도착하는 날
친모는 아마 자식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입니다. 소장이 도착하는 날, 두 가지를 한꺼번에 알게 됩니다. 자식이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식이 남긴 것에 자신의 몫이 있다는 것.
그다음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면 지나간 일을 들추고 싶지 않아 조용히 상속을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마흔 해 만에 찾아온 소식이 하필 ‘받을 몫’이라면 쉽게 내려놓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법은 무엇을 보는가
법원은 상속권 상실을 판단할 때 여러 사정을 함께 봅니다.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사실을 볼 때는 단지 연락이 없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왜 그러했는지도 묻습니다. 아이를 키우던 쪽 가족이 만남을 막았을 수도 있고, 친모 자신의 생계조차 버거워 양육비를 보낼 형편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정이 드러나면 법원은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이라는 판단을 망설일 수 있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 취지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앞에서 저는 자꾸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일 이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마흔 해입니다. 강산이 바뀌어도 네 번은 바뀌었을 긴긴 시간입니다. 그 세월 동안 양육비 한 번,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이 없었습니다. 가난했다면 돈 대신 안부라도 물을 수 있었습니다. 만남을 방해받았다면,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라도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단절의 세월만으로도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저버렸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밖에 상대방의 사정을 더 헤아려야 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헤아림입니까.
제도가 실제로 굴러가는 모습에도 걸리는 데가 있습니다. 이 소송에서 유족은 ‘없었던 일’을 증명해야 합니다.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 그 세월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면 상대방은 법정에 나와 자신의 사정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있는 쪽과 말할 수 없는 쪽이 같은 저울에 오르는 셈입니다.
권해드리는 말
이런 사정을 안고 사는 분이라면, 생전에 미리 정리해 둘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에게는 상속하지 않겠다는 뜻을 유언으로 남겨 두는 것입니다. 공증을 거친 유언이 있으면, 유언집행자가 그 뜻에 따라 법원에 청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법정에 고인 자신의 목소리가 남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구도 자신이 먼저 떠날 줄 모르고, 젊은 나이에 유언을 떠올리기는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태어난 순서대로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준비를 적극 권해 드립니다. 그 한 장이 있으면 남은 가족은 이런 복잡하고 아픈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고인 곁에 머물며, 충분히 애도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떠난 사람을 제대로 보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애도는 슬픔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 천천히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는 형을 잃은 동생이 나옵니다. 그는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미술관 경비원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림 앞에 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십 년을 보낸 뒤에야 그는 미술관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그 십 년은 오롯이 형을 애도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이 유족들에게는 그러한 애도의 시간이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장례를 마친 다음 날부터 구청에 전화를 걸고, 가족관계증명서를 떼고,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경위를 적었습니다. 슬픔은 서류 뒤로 밀려났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할 수 있는 한 빨리 끝내고 싶습니다. 이기는 것보다 먼저, 이분들에게 애도의 시간을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가게 문이 다시 열리는 날, 그분들이 서류가 아니라 고인 곁에서, 고인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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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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