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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7-20본문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중에서
남겨진 아이
그분의 아버지는 그분이 여섯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도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어린 나이 때부터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그 옛날, 기록이란 것은 늘 그렇듯 정확하지 않습니다. 제적등본에 적힌 그분의 생년월일은 족보에 적힌 것과 달랐고, 그분 아버지의 이름도 문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는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그래도 혼자 남겨진 그분 곁에 있어준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 위의 이부형이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보호자 자리를 채웠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에 관한 일들도 형이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라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기도 했거니와 달리 기댈 곳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
아버지는 오랫동안 사시던 곳에 땅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누나가 많았지만 그분만이 유일한 아들였고, 당시 관습에 따라 그 땅은 법률상 그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리가 생겼다는 것과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린아이가 권리자가 되는 행정절차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형이 처리했습니다. 그분은 그 당시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땅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필지로 나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그분의 이름으로 등재되었었나 봅니다. 그분은 그 사실조차 몰랐는데, 10여 년 전 국가에서 토지보상금 받아가라고 연락이 왔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앞으로 된 땅이 있었다는 사실을요.
수십 년이 지난 뒤
부모 없이 자란 아이에게, 열다섯 살 위의 형이란 존재는 단순한 혈육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형이 보호자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분은 오랫동안 그것을 고맙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런 형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의 나이도 이제 일흔을 넘겼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땅 이야기가 다시 나온 것은, 우연히 고향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였습니다. 그 땅 중 한 조각이 형의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형은 살아 있는 동안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습니다. 형의 이름으로 된 그 땅은 이제 형의 아들에게 넘어가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조카입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입니다.
흐릿한 기록, 오래된 일
상담 자리에서 그분이 꺼낸 서류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족보, 제적등본 그리고 몇 장의 문서.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오래된 사건을 다룰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기록의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류는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 일을 직접 알고 있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형이 어떤 근거로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들을 촘촘히 엮고, 부족한 부분은 사실조회와 추가 자료 확보로 채워가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너무나도 명확했습니다.
그분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쉬울 거라고 생각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찾아온 이유
형의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분이 모를 리 없습니다. 가족 간의 일이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남긴 것을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부모 없는 고아로 살면서 궁핍했던 자신의 과거를 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없는 것이라면 모르되, 있는 것을 안 이상 그분은 무엇이라도 움직여야 했습니다. 본인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였기에 더 그러하셨습니다.
법정에서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이제는 제가 할 일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할 일을 이미 마쳤습니다. 오래 묻어두었던 것을 꺼내 들고, 이 자리까지 온 것.
변호사의 마음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권리를 모르고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몰랐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 것들. 누군가를 믿었기 때문에 확인하지 않은 것들. 그런 사연을 가진 분들이 뒤늦게 상담실 문을 두드릴 때, 저는 그 시간의 무게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부동산 분쟁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이부형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기록이 불완전하고, 세월이 오래되었으며, 상대가 가족이라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도 이 소송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판단을 내립니다. 저는 가진 것을 최대한 정리하고, 부족한 것을 채울 방법을 찾는 일을 할 것입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