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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7-20본문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 김수영, <폭포> 중에서
사건은 단순해 보였습니다.
돈을 빌려줬는데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연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고소까지 결심하게 된 데에는, 단순히 돈을 못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은 처음부터 거액을 빌리는 구체적인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글로벌 대기업과 납품 계약이 성사되었고, 제조사에 선결제 대금이 급히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대기업으로부터 대금을 받으면 바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 용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분이 돈을 빌려줬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그분도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사업 상태도 낙관하기 어려웠습니다. 몇 년 전 청산 절차를 밟은 적이 있는 등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냥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는 말만 들었다면, 그분은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결심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 납품 계약이라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회수처가 있다는 말. 대기업이 대금을 지급하면 그 돈으로 바로 상환된다는 구조가 눈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용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분은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것이 용도사기의 핵심입니다.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돈의 사용용도를 명확하게 밝혔고, 그 용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돈을 빌려주지 않았으리라는 고도의 개연성. 이 인과관계가 성립할 때, 비로소 사기죄의 기망과 처분행위 사이에 연결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돈의 사용처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변제기일이 지나자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에서 받기로 한 자금이 갑자기 홀드 되었다 했고, 대기업 결제대금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했습니다. 한참 지나서는 하청 제조사에 자신이 거액을 빌려줬는데 거기서 돈을 못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 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분이 요청했습니다. 납품 관련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이체 내역을 보여달라고, 돌아온 건 언제나 같은 말이었습니다. '요청해 놨다', '정리해서 보내주겠다'. 그리고 아무것도 오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은 차용금을 약속된 용도에 사용했다는 어떤 객관적 증빙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에서 그분이 납득하지 못하는 지점입니다.
경찰의 결정, 그리고 석연치 않음
수사 결과는,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이었습니다. 거래내역을 확인한 결과 차용금 상당액이 법인 운영자금으로 사용된 점이 확인되었기에, 개인적인 사기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결정서를 받아 든 그분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 역시 그 결정서를 읽으면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판단한 것은 돈이 회사 운영에 쓰였는지 여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주장한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납품 계약 관련 선결제에 쓰겠다고 특정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는지를 따져야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결정서 어디에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납득되지 않는다면, 이의신청이 있습니다
경찰의 결정은 사건을 종결시키는 판단이지만, 종착점은 아닙니다. 이의신청을 통해 사건을 검찰로 넘겨 다시 한번 판단받을 수 있습니다. 경찰이 아닌 검사의 눈으로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는 수긍이 됩니다. 아쉽지만 이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할 수 있는 결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는 다릅니다. 이유를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고, 돌아서도 무언가 석연치 않음이 남는 결과들.
그럴 때 구제절차를 밟는 것은 권리입니다. 찝찝함을 안고 마무리하는 것보다, 다음 문을 두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저희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고소장에서 제기했던 용도사기의 핵심 논거—그 용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를 더 선명하게 부각할 것입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대여금 사건에서 사기죄의 성립은 쉽지 않습니다. 돈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사기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건이 민사로 해결됩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그분이 집요하게 묻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약속한 용도로 사용했다면, 그 증거 하나만 내놓으면 됩니다. 그것을 끝내 내놓지 못한 채로 혐의 없음이 된 결과를, 그분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사 결과를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면, 구제절차를 거치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결과를 떠나 절차를 밟았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