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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7-20본문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 박노해, <별은 너에게로> 중에서
처음은 언제나 낯섦입니다
처음 해보는 일을 앞두고 전문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모르는 세계에는 그 세계를 먼저 살아온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분도 그렇게 시작하셨습니다. K-Culture의 흐름을 타고 사업에 뛰어드셨지만, 그 세계의 언어는 온통 낯설었습니다. 상품 구성부터 생산 일정, 원료 조달까지… 결국 그분이 의지한 것은 그 분야에 오랫동안 명망을 이어온 전문 벤더사였습니다.
벤더사를 믿고 거래를 이어갔고, 다행히도 첫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후 3년간 거래는 별 탈 없이 이어졌습니다. 서로 잘해보자는 훈훈한 덕담이 그들 사이에 쌓여갔습니다.
숫자 하나가 품은 과거의 무게
스무 번째 발주, 선금을 지급한 직후였습니다. 벤더사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견적서 상품금액의 단위에서 숫자 0 하나가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를 지급하지 않으면 새 발주는 진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실제 금액의 10분의 1만 받아왔으니, 문제가 발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과거분의 미수금 정산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일시금이 부담스러우면 협상을 통해 일부 할인도 가능하다는, 선심 쓰는 듯한 말도 덧붙였습니다. 더 이상의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미 지급한 선금은 즉시 반환할 수도 있으니 의사를 알려달라는 말은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들렸지만, 실은 통보에 가까웠습니다.
그분이 당황하신 것은 벤더사가 정산이 필요하다고 말한 수 천만 원의 금액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견적서를 기반으로 광고비와 인건비 등 사업 전체의 구조를 설계해 오셨습니다. 지금 와서 과거의 숫자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지난 세월 동안의 사업 구조를 되물리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것은 소장이었습니다
그분은 선급금 반환을 공식으로 요청하셨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왔지만 관계는 여기까지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선급금이 아니라 과거 미지급금에 대한 지급을 청구하는 소장이었습니다.
소장에는 양 당사자 사이에 확정된 거래조건을 그분이 알고도 이행하지 않은 것처럼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벤더사 측이 선별한 증거들이 일방향으로 그분을 계약을 위반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착오라고 언제나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살다 보면 착오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법도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려면, 그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합니다.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마저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하면 이를 믿고 거래한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할 길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중대한 과실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이를 알고 악의적으로 이용했다면? 이 경우는 예외에 대한 예외로 또 취소가 가능합니다(뭐가 이리 복잡할까요?)
이 사안에서 견적서를 작성한 주체는 벤더사였습니다. 전문 벤더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견적서 기재 업무를 실수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중대한 과실이 아닌지, 벤더사가 제시한 숫자를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이가 의심하는 것이 마땅한지,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것에 과연 잘못이 있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가 이 사건에서 핵심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 벤더사를 끼는 거래의 특수성, 반복된 거래 속에서 형성된 관행, 그리고 그분이 구조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 이 모든 맥락을 재판부 앞에 펼쳐 놓아야 합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아직 반만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는 벤더사가 선별한 증거들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채워야 합니다. 양 당사자 사이에 오간 견적서, 세금계산서, 의사소통 기록, 그리고 거래 당시의 업계 관행까지, 면밀하게 분석해야 할 것들이 목록으로 쌓이고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을 재판부 앞에 온전히 내어놓는 일, 그것이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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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