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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7-15본문
무언가를 시도할 계획이라면
끝까지 가라.
찰스 부코스키, <끝까지 가라> 중에서
봄날의 사고
봄은 사람을 자꾸 바깥으로 불러냅니다. 맑은 하늘, 청량한 공기, 온몸으로 스며드는 바람. 그분의 남편도 그런 날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들뜬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사고가 났습니다.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얼굴과 어깨를 크게 다쳤고, 응급실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연락을 받은 그분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았는데, 의료진이 말했습니다. 얼굴이라 흉이 남을 수 있으니 전문 성형외과로 가보는 것이 낫겠다고요.
사고가 난 오후 세 시부터 병원을 전전하는 사이,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습니다. 다행히 찾아간 성형외과는 24시간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남편을 의료진에게 인계한 그분은 놀란 가슴을 겨우 가라앉히며 잠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짧은 숨 고르기의 순간에, “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침대에 있어야 할 남편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자전거 사고로 얼굴에 골절이 생겼던 남편은, 이번엔 손가락 골절까지 더해졌습니다.
그 한마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의사는 환자에게 등을 돌린 채 모니터상의 차트를 보며 말했다고 합니다. 뒤돌아 누우라고요. 침대는 체구가 큰 남편에게 지나치게 작았고, 병원 침대라면 당연히 설치되어 있어야 할 안전가드조차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간호사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혼자 좁은 침대 위에서 몸을 뒤집으려 하다가,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분은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낙상주의 안전고지를 받지 못했다고요. 병원 어디에도 낙상 주의 안내문을 본 기억도 없다고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시라고 했잖아요."
그 한마디 앞에서 그분은 멈췄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분명한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따지고 싶은 마음과 그냥 나가고 싶은 마음이 뒤섞였습니다. 치료비를 내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도, 찝찝함이 발걸음을 붙들었습니다.
병원이 져야 할 것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다치지 않도록 환경을 갖춰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를 '안전배려의무'라고 합니다. 치료의 질뿐 아니라, 치료받는 동안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것이지요.
이 사건에서 그 의무는 여러 군데에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먼저, 안전가드가 없었습니다. 낙상을 막기 위한 침대 난간은 병원이 당연히 갖춰야 할 시설입니다. 없었다면, 그것은 안전관리의 공백입니다. 침대가 환자 체형에 비해 지나치게 작았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은 환자에게 맞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간호사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체위 변경을 지시하는 순간, 그 자리에 환자를 살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켜봐야 할 이가 없는 상황에서 환자는 혼자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낙상주의 고지 역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위험을 미리 알려야 합니다. 구두로든, 안내문으로든.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보시라고 했잖아요"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의사의 그 한마디는, 사실 책임을 보호자에게 넘기려는 말입니다. 하지만 보호자가 병원의 안전 의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안전가드도 없고, 간호사도 없고, 사전 고지도 없는 상황인데, 보호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 이 사고의 유일한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병원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위험의 결과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입니다. 억울함을 말로 전하는 것과,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를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병원에 CCTV 영상 보전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서면으로, 지금 바로. 의료기관이 CCTV 영상을 보관하는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영상은 사라집니다. 병원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경찰에 증거보전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억울함은 감정이지만, 사건의 해결은 증거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모아두는 자료들이, 나중에 그 억울함을 풀 수 있게 해 줍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세상 모든 일을 법으로 따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것과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다릅니다.
그분의 남편은 병원을 믿었기에 그 문을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다시 다쳤습니다. 아무런 잘못 없이. 그런데, 병원은 과실을 인정하기는커녕 "보호자가 보고 있었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찝찝함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었을 것입니다.
권리를 되찾는 길이 귀찮고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CCTV 보전 요청. 그게 시작입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