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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이아, 빛으로 피어난 이야기] 45. 보증금에서 돌려받을 돈이 0원이라고 합니다 - 그래도, 임대인에게 맞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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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8-06

본문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목 좋은 자리

그분은 상가의 임차인이셨습니다.

큰맘 먹고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목이 좋은 자리를 구하느라 발품을 많이 파셨다고 했습니다. 보증금이 좀 셌지만, 그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을 돈이었으니까요.


오픈하고 나서는 밤낮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주말도 반납했습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매출이 조금씩 오르는 걸 보니 저절로 부지런해졌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2호점을 내셨습니다. 자금은 빠듯했지만 대출을 더 받았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사만 잘 되면 임차료는 부담도 아니었으니까요.


문제는 2호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파가 먼저 시작한 1호점까지 번졌습니다. 늘 제날짜에 넣던 관리비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차임도 밀렸습니다.   


9개월의 버팀

상가임대차는 3기의 차임을 연체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것을 그분도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든 3기는 넘기지 않으려 애쓰셨습니다. 그런데 하필 겹친 보증금 인상 시기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밀린 차임에 인상된 보증금까지 한꺼번에 마련할 방법이 없었어, 결국 3기 연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임대인은 당장 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받아둔 보증금이 상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은 밀린 차임을 줄이려 애를 썼습니다. 월말이 되면 차임과 관리비부터 떼어놓고 나머지로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9개월을 버티셨습니다.   


합의라는 이름의 제안

어느 날 임대인이 찾아왔습니다. 사업이 예전 같지 않으니 앞으로도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다음 달까지 정리하면, 밀린 차임과 연체료, 원상회복비용을 공제하고도 5,000만 원은 남을 테니 그걸로 다른 일을 시작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권했습니다.


계약종료일까지는 3개월이 남아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남은 기간이라도 장사를 더 할지, 임대인의 말을 받아들일지 고민 끝에 임대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다음 달 말까지 영업한다는 공지문을 매장에 붙이셨습니다. 직원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거래처에도 마지막 납품일을 알리셨습니다.   


사흘 전

임대인이 말한 사업종료일을 사흘 앞두고, 임대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정리는 잘 되어 가느냐는 인사와 함께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예상 보증금 반환액이 적혀 있었는데, 처음 말과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없던 항목, "렌트프리 반환금"과 "위약금"이 새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임대차계약서에 따르면, 임차인의 계약위반으로 해지될 경우 최초 제공받은 렌트프리 3개월분을 반환하고 위약금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대인은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원상회복비도 처음 말했던 것의 두 배로 적혀 있었습니다.


결론은, 돌려줄 보증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임대인이 손해를 보았으니 얼마를 더 내야 하지만, 사정을 봐주는 셈 치고 그냥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만하게 되었나

계약서의 세세한 조항을 다 살피지 못한 것은 그분의 과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이 정말 임차인의 잘못으로 해지된 것일까요.


저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임대인에게는 이미 일방적 해지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9개월 동안 해지를 통보하지 않고, 대신 합의해지를 권유했습니다. 계약이 합의로 종료된 것이라면, 임대인의 주장처럼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해지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보증금에서 렌트프리 반환금과 위약금을 공제할 근거도 없습니다. 이 부분을 다투기로 했습니다. 원상회복비가 실제로 그만큼 발생했는지도 따질 것입니다. 보증금에서 공제할 항목과 액수는 이를 주장하는 임대인이 입증해야 할 몫입니다.   


잘 짜인 구성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임대인은 분명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권한을 쓰지 않고 굳이 합의해지를 유도했을까요.


짐작하건대, 명도를 수월하게 하려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차인이 스스로 해지를 받아들이면 명도가 쉬워집니다. 실제로 임대인이 처음 해지를 권유했을 때 건넨 자료에는 계약종료일과 명도일이 나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거래처와의 계약을 정리하고, 비품을 처분하고, 직원을 내보내는 과정은 한번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임대인은 그 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찾아와, 보증금에서 돌려줄 것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잘 짜인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임대인은 3기 차임연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증명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임차인이 차임을 3기 연체한 사실은 객관적으로 남아 있고, 임대인이 유도한 합의해지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물론 그 증거의 격차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이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법적 분쟁에 '싸움'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저는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누구보다도 그 단어에 걸맞게 움직입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계약서에 적힌 문구는 힘이 셉니다. 그러나 그 문구가 실제로 적용되어야 할 사실관계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임대인이 손에 쥔 것은 계약서 한 장이었고, 임차인이 쥔 것은 9개월간 오간 대화와 행동의 흔적이었습니다.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 증명하는 일은 이제 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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