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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9-03본문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구나
그대와 나
돌아갈 길 가늠하지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리고 말았구나
- 장석주,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중에서
예상치 못한 법원등기
우체국 등기가 왔는데 부재중이었다는 안내문이 문틈에 꽂혀 있습니다. 보낸 사람이 법원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면, 일부러 다음날에도 집을 비워서 결국 받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받지 않으면, 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일 겁니다.
소장을 피하면 벌어지는 일
그러나 소송은 피한다고 사라지는 일이 아닙니다. 법원이 아무리 서류를 보내도 받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재판이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주소지, 사무소 그 밖의 여러 경로로 송달을 시도하다가, 그래도 소재를 알 수 없다고 판단되면 공시송달이라는 절차로 넘어갑니다. 법원 게시판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일정 기간 서류의 내용을 공고해 두는 것으로, 실제로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제도입니다.
공시송달이 이루어지면 재판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한 번도 법정에 나가지 않아도, 답변서를 전혀 내지 않아도 판결은 선고됩니다. 원고가 주장한 내용 그대로요. 심지어 판결이 선고된 뒤에도, 그 판결문조차 같은 방식으로 공시송달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본인이 실제로 판결을 받아 보지 못한 채 항소기간이 흘러가 버리고 판결이 확정되고 맙니다.
"몰랐다"는 말로 되돌릴 수 있을까
뒤늦게 판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분들은 흔히 이렇게 물으십니다. 몰랐다고 하면 다시 다툴 방법이 있지 않느냐고요. 그런 제도가 있기는 합니다. 추후보완항소라고요. 자신의 책임으로 볼 수 없는 사유로 항소기간을 지키지 못한 경우,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다시 항소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제도입니다. 공시송달로 진행된 사건이라면 대체로 이 요건에 해당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요건입니다. 단순히 몰랐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정말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유였는지를 법원이 다시 따집니다. 다른 하나는 기간입니다. 공시송달로 인한 판결이 있었음을 알게 된 날부터 딱 2주 안에 항소해야 합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더는 다툴 방법이 남지 않습니다.
결국 소장을 피한 대가는 이렇습니다. 처음 재판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뒤늦게 알았을 때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마저 매우 좁습니다.
같은 사실관계, 전혀 다른 두 개의 결말
이번 사건은 두 사람이 함께한 공동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두 사람 모두 유죄가 인정되었습니다. 민사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른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중 저희에게 사건을 맡기신 그분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떤 경위로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실제로 챙긴 이익은 얼마나 미미했는지, 지금의 경제적 사정은 어떠한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손해 발생 및 확대에 원고의 과실이 참작되어야 함을 하나하나 답변서에 담았습니다. 잘못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항변을 한 것입니다.
법원은 답변서에 담긴 사정을 하나하나 살핀 끝에, 원고가 청구한 금액 중 60%만 지급하라고 판단했습니다. 40%에 이르는 책임이 줄어든 것입니다.
다른 한 분은 소송이 진행되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시송달로 절차가 진행되었고, 원고가 청구한 금액 전액이 그대로 인정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한 같은 사실관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책임의 상당 부분을 덜어냈고, 다른 한쪽은 청구된 금액 전부를 떠안게 된 것입니다.
변론주의라는 원칙
공동불법행위,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사재판은 당사자가 법정에서 주장하고 밝힌 사실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법원이 알아서 저 사람은 사정이 딱하니 깎아주자고 나서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법정에 꺼내 놓아야 하고, 그래야 법원도 그것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같은 사실관계 위에 있었다고 해서, 다투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유리한 결론을 똑같이 나누어주지는 않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소장을 받고 나면 겁이 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따라 외면하는 순간,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장을 직접 송달받지 못했더라도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로 인해 재판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두 분에게 다른 결론이 내려진 것은 잘못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법정 앞에 꺼내 놓았는가, 그러지 않았는가의 차이였습니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받을 것인지는 결국 스스로 다투어야만 합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가 시작됩니다